지옥같은 마음에서 천국같은 마음으로 저는 1959년 경북 의성군 금성면 고갑이라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갑이라는 마을을 속칭 '고채비'라고도 부릅니다. 저는 당시 고갑교회 전도
사였던 선친이연우 목사님과 어머니 이정숙 사모님 사이의 3남 3녀 중 장남
으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부모님의 가문은 두 가문이 다 오랜 신앙의 연조를 가진 가문입니다.
저희 아버님의 고향은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라는 곳인데 속칭 '느리
미'라고 하는 마을입니다. 아버님께서 어릴 때는 그곳에 차량이 없었기 때문
에 의성읍까지 무려 60리를 걸어서 가야했습니다.
아버님께서 현재 대구에서 신학교에 다니실 때는 가끔씩 고향에 오시면 대
구의 자취방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해서 사용할 장작을 등에 지고 의성읍까
지 60리나 되는 거리를 걸어가셨다고 합니다. 한번씩 고향에 오실려면 오실
때나 가실 때나 60리를 걸어다녀야 할 정도로 첩첩산중입니다.
제가 어릴 때 방학이 되면 고향에 가곤 했는데 그 때는 옥산면소재지까지만
버스가 들어왔기 때문에 먼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캄캄한 밤에
길을 걸어오다가 누님이 발을 잘못디뎌서 길 옆의 개울물에 빠지기도 했습
니다. 어릴 때 고향에 가면 전기불이 없어서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지냈습니
다. 그리고 산 위에 있는 예배당에는 호야등을 켜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님의 가문에서는 증조할머님부터 예수님을 믿어서 저는 4대째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가문에서는 외증조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어서
역시 4대째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제 두 딸은 5대째 기독교인
입니다.
저희 할머니는 신앙심이 아주 깊은 분이었습니다. 서울 서현교회를 담임하셨
던 박경남목사님께서 의성지방에서 목회하실 때 가끔씩 60리를 걸어서 순행
예배를 드리러 오셨는데 그 때 할머니는 귀한 하나님의 사자 목사님이 오셨
는데 고기를 대접할 형편이 못되자 하나님께 "하나님, 꿩 한마리만 잡히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서 꿩을 잡아서 박목사님께 요리를 해드렸다고 합
니다.
그래서 훗날 박경남목사님이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을 때 가시는 곳마다 저
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셨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그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
기고 주의 종 목사님들을 극진히 잘 섬겼습니다.
저희 아버님은 철저한 청교도적인 목회자이셨습니다. 어머님이 처음 시집을
와서 주일 아침에 교회에 입고 갈 옷을 다리미로 다리고 있자 아버님이 말
없이 그 다리미를 가지고 나가시더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철저히 주일성수
를 하셨습니다. 저희 형제 자매들은 주일에 공부를 하는 것은 꿈도 못꾸었
습니다.
어머님은 첫딸을 낳으시고 2년 후에 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저 말고 또 한명의 아기가 저와 같이 있었습니다. 열달동안
어머니 태중에서 같이 지냈던 그 아기와 저는 열달이 다 되어가자 세상으로
먼저 나오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제가 가위를 내고 그 아기가 보를
내서 내가 몇 시간 먼저 세상에 나와서 그 날부터 늦게 나온 아기는 이 날
이 때까지 저를 형으로 불러야 하는 동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쌍둥이였던 저와 제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버님이 시골교회 전도사였던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그 때 우리 위에는 우리 둘보다 2년 먼저 태어
난 누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우리 두명의 남동생이 한꺼번에 태어나자 아
기 셋을 키우기에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누나는 하는 수 없이 고향의
할아버지댁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딸을 낳아서 길러보니 얼마나 귀엽고 재롱스러운지 부모님께서 가난
때문에 귀여운 재롱동이 딸을 할아버지에게 보낼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괴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도 딸이 있는데 말을 배워서 하
는 말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저희 아버님과 어머님이 이
제 갓 말을 배우고 한참 재롱을 떨 두 살의 딸과 가난때문에 생이별을 했던
일을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팠고 딸을 보내 놓고 남몰래 얼마나 우셨
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부모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을 두세살 어린 나이에 갑자기 부모님과
헤어져 살면서 "엄마! 아빠!"를 부르며그리워하며 울었을 누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불쌍해집니다.
제가 딸을 낳아 길러보니 얼마나 귀여운지 맞벌이 부부들이 두세살 난 아들
이나 딸들을 할아버지 할머니댁으로 보내는 것을 생각하면 보내는 부모님이
나 떠나는 아기나 그 생이별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상상이 되어집니다.
몇 년 후 할아버지댁에서 살던 누나가 저희 집으로 돌아와서 살고 있을 때
저는 누나가 남의 집 식구인 줄 알고 "너 집에 가.(너희 집에 가)"라고 했다
고 합니다. 그 광경을 본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한참 재롱을 피우던 나이에 부모님과 생이별을 했던 아기가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얼마나 기뻤겠으며 누님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러한 부모님이나 누님의 마음은 티끌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너희 집에
가!"라고 한 저는 부모님과 누님에게 큰 죄인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릴 때 누님에게 "너희 집에
가!"라고 한 것도 큰 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얼마 후 제 남동생이 태어났는데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있던 우리가 갑자
기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기자 " 엄마, 인제 알라 갖다 내뿌리라."(엄마. 이제
아기 갖다 내버려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먼 훗날 하나님은 이것도 무서운
시기 질투의 죄임을 보여주셔서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집은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는데 아버님이 쌍둥이인 저와 제 동
생을 안고 마루에서 내려오다가 높은 봉당에서 넘어져 두 아기가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망석리의 집도 옛날 집인데 저
희 집 마루(완도에서는 마루를 도지라고 합니다.)에서 첫째딸 나혜가 세 번
떨어지고 둘째 딸 은비도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아기들이 마루에서 떨어지
면 놀라고 아파서 숨이 넘어 갈 듯이 웁니다.
그런데 제가 어릴 때 살았던 고갑교회사택의 마루밑 봉당은 아주 높았는데
거기서 우리 아기들은 자주 떨어졌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고갑교회는 산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깃불이 안들어왔기 때문에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호야'라는 석유등을 켜 놓고 예배를 드렸습니
다.
그 때 저희들은 놀이터가 없어서 쓰러진 고목에 올라가서 고목의 가지위에
올라서서 나뭇가지를 발로 굴리며 "호사야 호사야 호사낢게 호사야"라는 노
래를 부르는 게 최고의 놀이였습니다. 그리고 산 위에 있는 우리 집에서 까
마득히 먼 곳을 보면 기차가 지나갑니다. 그러면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마당
에 서서 "기차봐라. 기차봐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버님은 고갑교회를 시작으로 평생 면단위의 농촌교회에서만 목회를 하셨
습니다.
아버님은 가시는 곳마다 '성자'라는 칭송을 들으며 사셨습니다. 청렴과 결백
의 삶을 사셨습니다. "목사가 돈을 알면 안된다."는 사상을 가지고 계셨습니
다. 심지어 6.25 전쟁 때 총상을 입고 몸에 파편이 박히는 등 부상으로 인해
명예제대증을 받고 명예제대를 하여 보훈처에서 상이용사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되었는데도 "국민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서 부상을 좀 당
했기도서니 그것 때문에 나라돈을 축내서야 되겠는가? 나에게 줄 돈이 있으
면 나보다 더 심한 부상을 입어서 일을 못하는 전우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가게 해야한다."며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6. 25 때 군대도 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라에서 주는 상이용사 연금을 받아
먹기 위해서 자해(自害)를 해서 연금을 타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버님은 전
쟁터에 가서 부상을 입고 명예제대까지 발급받았으면서 상이용사 연금을 받
지 않았습니다.
"성자의 가족은 고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돈을 모르고 사생활이 깨끗한 청
빈의 성자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우리 가족은 심한 '물질 고생'을 해야 했습
니다. 도시의 큰 교회에서는 자녀의 교육비를 책임져주고 심지어 유학비까지 대주는 교회가 있지만 면단위의 교회들에서는 대학학자금을 주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시무하셨던 교회에서도 목회자 사례금(월급)은 주었지만, 대학학자금을 대주지 못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은 저희 6남매를 누구못지 않게 공부를 시키고 싶어서 다 대
학까지 보내고 싶어하셨습니다. 부모님은 아들 딸에 대한 차별을 전혀 하시
지 않는 분이셨으므로 6남매 전부를 똑같이 공부시키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
래서 6남매를 공부시키려고 하니 모든 희생은 부모님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을 하고라도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래서 6남매를 모두 대학교육을 시켰습니다. 물론 돈이 없
어서 대학교육을 시키지 못한 분들이 들으면 "그래도 대학공부를 시킬 정도
가 될 정도가 되었는데 고생은 무슨 고생이냐?"고 말씀하시겠지만 자녀들을
대학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가난한 부모님들은 대부분 그 부모님들이 물질적
으로 철저히 희생합니다.
미국에 가서 암전문의가 된 원종수권사님의 어머니 김철례권사님의 글을 읽
어보면 김권사님은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잃고 가정부 생활(식모살이), 과일노
점상등을 하면서 자녀들을 대학교육까지 시켰습니다.
김진홍목사님의 어머니도 남편이 없는 홀어머니로서 재봉틀 바느질을 하면
서 김목사님등 네자녀를 대학교육까지 시켰습니다. 김 목사님의 어머님은 머
리털을 잘라서 팔아다가 자녀를 양육할 정도로 희생하며 자녀들을 대학교육
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부모님들이 가난하지만 공부를 시키고 싶은 부모님들은 그 어떠
한 희생을 해서라고 교육을 시킵니다.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옛날 가난한 시절 부모님들은 거의 마찬가
지지만 저희 가족은 명절 때 고향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생 가족끼리 관
광여행한 번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여덟식구의 대식구였기 때문에 여
행을 가면 비용도 많이 들고 자가용이 없어서 버스로 이동하기도 힘들어서
그랬겠지만 문제는 '비용'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저희 부모님은 잡숫는 것, 입는 것을 완전히 희생하셨고 자신들을 위해
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세월 부모님의 삶을 돌아보면 오직
희생, 희생, 희생, 절약, 절약, 절약, 검소,검소,검소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도 어머님을 생각하면 '자녀들을 위한 철저한 희생, 철저한 절약'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물론 부모님뿐아니라 저희 자녀들도 심한 고생을 해야했습니다. 물론 옛날에
는 다 못먹고 못입고 자랐겠지만 저희 가족들도 가장 못입고 못먹고 자란
사람축에 속할 것입니다. 저도 가장 못먹고 자란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
6남매를 공부시킬려면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완전히 희생할 수 밖에 없었습
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자식들을 보면 못먹인 것이 한(恨)이 되어서 명절에 모이기
만 하면 자꾸 "많이 먹어라."고 하십니다.
저는 옷을 거의 사입지 못했습니다. 제 손으로 옷을 사입은 것은 손꼽을 정도입니
다.
양복도 결혼할 때 한 벌 맞춰입은 것외에는 아버님이 입으시던 것을 아버님
이 소천(召天 :천국에 가심)하신 후 제가 아버님이 입던 양복과 와이셔츠를
한 벌도 안버리고 그대로 입었거나 아는 사람들이 준 것을 입고 다녔습니다.
제가 결혼 후에도 너무 옷을 안사입으니 결혼기념일인가 생일인가에 아내가
몰래 저의 옷의 치수를 알아서 저에게 말도하지 않고 서울의 주사랑교회 유
용환사모님에게 돈을 보내어 백화점에서 세일하는 양복을 사 달라고 부탁하
여 사준 적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