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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청랑 이상현목사

제목

어느 한센환우의 슬픈 고백

어느 한센병 환우의 삶

어느 한센병환우의 고백수기를 들어봅시다.

「내 고향은 서울이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다.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다쳤다. 그런데 상처가 난 곳이 오랫동안 낫지않고 묵은 헌데가 되었는데 그 자리에 이상한 반점이 생겼다. 그러면서 온 몸이 근질 근질하며 개미새끼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할머니는 손자인 나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실 정도로 사랑하셨다. 금이야 옥이야 불면 날세라 만지면 끼질세라 하며 나를 끔찍이 사랑하셨다.  

그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할머니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아시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던지 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드렸는지 모른다.
조상탓이라며 묘지까지 이장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집안의 귀신을 쫓아낸다며 여러 무당들을 불러다가 날마다 굿을 했다. 그러는 중에 내 몸의 반점은 점점 더 커져갔다. 얼굴에도 반점이 생기고 눈썹은 하나 둘씩 빠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이구 저 애 문둥이가 되었네!”
어느 노파가 나에게 던져준 소리였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온 몸에 차거운 소름이 끼쳤다.

걱정이 되어 중앙의료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분명히 몸에서 한센균(나균)이 나왔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야단법석을 하며 금방 무슨 큰 전염이라도 될 것처럼 소동을 부렸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문둥이란 말인가?’
눈 앞이 캄캄했다. 문둥이로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나을 것 같아서 쥐약을 사가지고 청계천냇가로 갔다.  쥐약봉지를 꺼내놓고 냇물을 바라보니 너무나 더러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죽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다.

내가 나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는 커다란 충격을 받으셨다.  나를 그렇게 끔찍이 사랑하시던 할머니, 세상에 둘도 없는 손자라며 나를 금이야 옥이야 길렀던 할머니, 그 할머니는 손자가 문둥이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쓰러져 시름시름 앓다가 끝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자가 문둥이가 되어 온 세상사람들에게 멸시당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다니며 돌세례를 받고 공동묘지 같은 곳에서 기거하며 비참하게 살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슬프고 고통스러워 병이 들어 앓다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집에서 살 수가 없었다. 한센병인 줄 몰랐을 때에는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었지만 한센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전염될 수도 있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어디론가 멀리 떠나려고 집을 나서자 어머니는 “네가 사람이지 왜 문둥이냐?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어디로 간단 말이냐?”고 목을 놓아 우시며 가지 말라고 부여 잡으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을 뿌리치고 나왔다. 어머니는 목을 놓아 통곡하며 울부짖으며 뒤따라 오셨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집을 떠났다.

‘어머니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저는 가야만 하고 죽어야 합니다.’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는 가로수에 기대어 목을  놓아 울고 계셨다. 사랑하는 아들이 이제 문둥이 거지가 되어 공동묘지같은 곳에 기거하며 세상사람들의 지탄을 받고 조롱을 받고 돌세례를 받으며 살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처절했겠는가? 가로수에 기대어 목을 놓아 우시는 그 어머님을 뒤로하고 떠나는 나의 심정도 처절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어느 후미진 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였다. 사방은 적막하고 석양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17세의 청소년 문둥이였던 나는 공동묘지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공동묘지에 앉아 있으니 너무나 무섭고 종일 굶어서 배는 고프고 신세가 처량하여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공동묘지에서 눈물로 밤을 새고 날이 밝자 내려왔다. 도저히 살고 싶지 않아서 어느 연못에 몸을 던졌다. 그러나 부근에서 일하던 농부의 도움으로 구조되고 말았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에 끈을 묶어 목을 매달고 몸을 공중으로 던졌다. 목이 메여서 고통이 극심하고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는 순간 전에 동네사람들이 개를 잡을 때 목을 메어 죽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자 ‘병든 것도 원통한데 내가 왜 개처럼 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노끈을 힘껏 잡아당기니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다시 동네로 내려왔다. 동네개들이 몰려와서 냄새나는 나의 상처를 핥고 물어 뜯기도 했다. 물어띁어도 아프지 않고 아무 감각이 없었다. 동네의 아이들은 무슨 더러운 짐승이나 본 것처럼 가래침과 돌팔매질을 하고 막대기로 찌르기도 하여 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어느 할머니의 헛간에서 쉬고 있는데 동네사람들이 몰려와서 “ 이 동네에 아이가 없어졌는데 네가 잡아먹지 않았느냐?” 며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몽둥이로 개패듯이 나를 때렸다. 
나는 한센병자인 것을 확인한 후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한 적이 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하나님, 당신은 이 아픔을 아시겠지요?”

집을 나올 때 입고 나온 까만 중학생교복은 개에 뜯기고 산가시에 찔리고 매에 찢겨 나가서 거지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집을 나온 뒤 세수도 못하고 손톱도 못깎고 목욕도 못하고 산과 공동묘지와 거리를 방황했으니 내 행색은 상거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사람들에 의해 한센환우수용소로 가게 되었다. 그곳은 청주에 있는 무심천 한센환우 수용소였다. 거기에는 많은 한센환우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한센환우들을 간호하는 간호사 한 명이 있었다. ‘나영’이라는 이름의 그 간호사는 서울에서 간호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다. 백의의 천사인 나영간호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의 교훈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청주의 무심천 천막수용소에서 환센환우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학을 이용하여 그의 어머니와 같이 한센환우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영이 한센환우들을 돌보는 그 사랑과 정성과 숭고한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멸시하고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한센환우들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고 헌신하는 나영의 삶은 보면서 나도 한센환우들을 위해서 일생을 봉사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몸이 성한 나영어머니와 나영간호사같은 사람이 자기의 몸도 아끼지 않고 한센환우를 위해서 희생 하는데 하물며 이미 한센병이 든 내가 한센환우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 나날을 보내던 중 6.25 동란이 터졌다. 인민군들은 우리를 아예 인간 취급도 하지 않고 전쟁에 짐이 된다며 무심천뚝방에서 한센환우들을 마구 죽여댔다. 그런데 나영간호사는 그곳 천막수용소에 머물면서 한센환우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인민군에게 개죽음을 당하는 한센환우들을 본 나영간호사는 피난을 떠날 생각도 하지 않고 한센환우들이 비록 인민군에게 죽음을 당하더라도 목숨만은 천국에 가야된다며 최후까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자며 복음을 전했다. 목숨을 건 전도였다. 

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나영은 한센환우들의 외모는 병자지만 그들의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최후까지 남아서 천국복음을 전했다. 많은 한센환우들이 나영이 전하는 천국복음을 믿은 후 한센환우들을 개처럼 취급하는 북한 인민군들에게 죽음을 당했고 일부는 피난을 떠나버려 한센환우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자 나영간호사는 비로소 그곳을 떠났다.
                              
나는 그 때까지 예수님을 믿고 있지 않았지만 나영이 전해주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가는 천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고 계시며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그녀의 말대로 나같은 것도 멸시하지 않으시고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다시 청주에 모인 한센환우들은 청애원이라는 한센환우촌을 만들어서 살게 되었다. 나영간호사도 돌아왔다. 어느 날 서울에서 검은세단을 탄 청년이 나영에게 결혼하자며 찾아왔다. 그 청년은 결혼을 하면 곧바로 미국에 가서 살게 될 것이라면서 나영에게 서울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영은 “우리는 갈 길이 다르다.”며 그 청년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 청년이 가고 난 후에 나영은 원장님에게 “저는 한센환우들과 함께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어요.  이 결심은 변할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한센환우들을 그처럼 사랑하는 마음과 숭고한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한센환우들을 깊이 사랑하는 그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그녀에게 그러한 사랑의 마음을 주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나영간호사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영의 어머니는 실로 믿음이 깊고 사랑이 많은 훌륭하고 참된 신앙인이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병인 한센환자인 나와 건강한 정상인인 자기 딸 나영이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청애원에서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도 많이 겪었다. 그 때마나 나는 “주여 당신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고통은 얼마나 무겁고 혹독하였나이까?”라고 기도하며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고통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았다. “약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죄인들을 위해서 오신 주님이시여. 나의 겉사람은 질병과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내 영혼은 날마다 주님을 향해 가까이 갑니다.” 라고 고백하며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더 나가기 원합니다.”라는 찬송을 불렀다.

그 후 나는 소록도에 내려와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비록 병 중에 가장 악질을 가진 문둥이였지만 나의 심령은 자유를 얻엇고 감사와 기쁨의 찬송은 내 입에서 멈출 날이 없었다.

어느 날 한센환우라는 것이 큰 열등감이 되어 마음에 고통을 느꼈을 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성경 신약 고린도 후서 12장9절)말씀이 나를 붙들어 주셨다.
            
나는 “ 오 주님 감사합니다. 나같은 것을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며 감격하여 울면서 기도를 드렸다.

하루하루 내 입술에서는 찬송이 늘 흘러나왔고 내 가슴은 마치 천사의 심장이라도 소유한 것처럼 사랑과 감사가 솟구치곤 했다. 그러자 소록도의 동료 환우들은 나를 부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심지어 어떤 한센환우성도는 나를 성경에 나오는 “참 감사의 문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록도에는 교회가 여러개 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한센환우 성도들이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는데 손가락이 다 떨어지고 하나도 없는 환우들도 열심히 손뼉을 치고 찬송을 부른다. 그래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아니라 막대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예배당을 울려 퍼지기도 한다. 나는 손가락은 떨어져 나가지 않아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다. 찬송을 부르는 순간 내 가슴 깊은데로부터 솟구쳐오르는 그 기쁨! 그 평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전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리가 점점 더 아파와서 한쪽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고 말았다. 나는 얼굴과 전신에 문둥이의 형적이 새겨진 것만도 서럽고 괴로운데 거기에 다리 하나마저 없는 모습을 연상해 보았다.
‘병신!’ 내가 문둥이에다 병신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이 될 것 같았다.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는 이 괴로운 모든 것을 능히 이기고 남는 것이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나를 붙드시는 것이었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목발을 짚고 병원문을 나섰다. 내 마음 속에는 불평도 원망도 이미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감격적인 은총만이 용솟음칠 뿐이었다.

나는 새로운 감격과 감사를 되찾은 채 남은 신학공부를 마치었다. 많은 졸업생 가운데서도 나 혼자만이 축복을 받은 듯 나는 마냥 기쁘기만했고 감사하기만 했다.

썩어질 나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깨끗하게 하시고 천금보다 귀한 믿음을 주셔서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고 천국의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한센병에 걸리지 않았던들 오늘 이같이 우주보다 귀한 주님의 생명과 기쁨을 소유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한 것 뿐이었다. 나같은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살과 피를 아낌없이 바쳐 주신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얼마든지 내 목숨을 주님께 바치고 싶을  따름이었다.

절단했던 다리를 다시 수술하기 위해 국립의료원에 다시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수술의 고통 속에서도 얻어지는 감격적인 기쁨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병실에서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나는 병실의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침과 때를 따라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예배를 드렸다. 나는 병실의 환자들에게 ‘독실한 예수쟁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목사가 되어 소록도교회에서 목회를 했다. 소록도 교회에는 8개 교회 3천여 성도가 있었는데 8 개처 교회 전체를 지도하시는 담임목사는 한센병자가 아닌 정상인이신 김두영목사님이셨다. 그 분은 한센환우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오랜 기간동안 목회를 하셨는데 나는 김목사님을 도와 열심히 목회를 하면서 한편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다니며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했다. 17세에 한센병을 얻어서 집을 나와 밤이면 무서운 공동묘지를 집으로 삼고 낮이면 거지가 되어 밥을 얻어 먹기 위해 어린이들의 돌팔매를 받으며 떠돌아 다니던 내가 목사가 되어 전국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가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자비이므로  감사와 감격 속에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주님의 은혜에 억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이 글은 [골고다 섬의 십자가](유덕용 목사 저, 청음사)]의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제가 한국 최초의 한센환우 목사였던 유덕용 목사님의 고백의 글을 소개한 목적은 

첫째, 인간의 질병 중에 가장 끔찍하고 무서운 질병인 한센병에 걸린 환우도 예수님을 만나면 기쁨과 감사와 행복 속에 보람있는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유덕용 목사님은 한센병에 걸려서 17세에 집을 나와서 공동묘지에 살았습니다. 그 당시의 한센병환우들은 애양원이나 소록도같은 한센환우전문치료요양기관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몰랐고, 설령 그러한 기관이 있다고 해도 수용인원이 적어서 대부분의 환자들은 떠돌아 다니며 걸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걸인들은 마을밖의 공터나 다리밑에다 천막집이라도 짓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센환우걸인들은 마을 밖이나 다리 밑에 살면 한센병이 전염된다고 해서 마을 주민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납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산에 들어가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을과 가까운 야산에서 살면 산 주인들이 알고 몽둥이찜질을 하고 쫓아버립니다.

 그래서 마을 가까운 산에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을에서 너무 거리가 먼 깊은 산 중에 들어가서 살자니 낮에는 나와서 구걸해야 되기 때문에  깊은 산 속에서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이 드나들기를 꺼려하는 곳이 바로 공동묘지나 일반무덤가입니다. 밤에는 무섭고 재수없다고 공동묘지까지 한센환우들을 쫓아내러 오는 사람이 없기에 마음놓고 거기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한센환우들이 주로 공동묘지나 일반무덤에서 잠을 잤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밤에는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 마을에 내려 오면 병을 옮긴다고 극히 인심이 좋은 사람외에는 거의 다 문전박대해서 내쫓아 버립니다. 제가 어릴 때에도 한센병걸인이 많았는데 그 분들이 마을의 다른 집에 가면 대부분 쫓겨납니다. 매를 맞고 쫓겨나기도 하고 개를 풀어서 내쫓기도 합니다. 한센환우들이 저희 집 부근의 집에서 쫓겨나 저희 집으로 오는 모습을  두어 번 봤습니다. 어떤 한센환우는 쫓아낸 집을 향해 주먹욕 -왼팔을 둥글게 하고 오른팔을 둥글게 한 왼팔 사이로 넣고 앞으로 때리는 모습 -을 하면서 “너거 집에서 안준다꼬 굶어죽을 줄 아노? 니가 안조도 목사님 집에 가서 얻어묵으만 뒤제(되지)”라며 저희 집에 옵니다. 목사 사택인 저희 집에는 한센환우들이 단골로 드나들었습니다.  저희 집에 오면 어머님이 밥을 많이 주기 때문에 한센환우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왔습니다. 한센걸인들이 동네에 다니면 동네개들은 냄새를 맡고 달려와서 헌데를 핥습니다. 그리고 동네 어린이들은 돌맹이를 들고 따라와서 돌세례를 퍼붓고 달아납니다.

이러한 비참한 한센환우 걸인의 신세였던 유덕용씨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운명이 180도 바뀌어 훌륭한 목사가 되어 보람있고 기쁘고 활기찬 삶을 살았습니다. 

둘째는, 몸이 건강한 정상인들에게 도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무서운 병인 한센병에 걸렸으면서도 감사와 기쁨과 평안한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유목사님을 생각하면 몸이 건강한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한센환우들과 하향비교를 하면 우리의 처지와 환경과 조건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극한 시련과 고난을 당해도 꿋꿋이 목숨만 유지하면 언젠가는 밝은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유덕용 목사님의 할머니는 손자가 한센병에 걸리자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그 충격 속에서도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아들이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된 천사같은 건강한 간호사와 결혼을 하고 목사가 되어 전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며 복음을 전하고 건강한 네 아들을 낳고 훌륭히 교육시키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떠한 충격적인 고난과 시련을 당해도 ‘죽지않고 살아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기쁘고 행복한 날이 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넷째로 ‘사람 잘만나는 복’이 가장 큰 복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입니다.  유덕용씨가 만일 간호사인 나영과 나영의 어머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폐인이 되었거나 운명이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완전히 헌신된 정상인인 여성간호사인 나영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고 그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운명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 잘 만나는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앞으로 남은 생애도 사람 잘 만나는 복을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또한 저희 딸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사람 잘만나는 복을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교회의 성도님들이나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도 사람 잘 만나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 두 딸이 아직 4살 2살이지만 지금부터 배우자를 위한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헌신된 남성, 오직 아내만 극진히 사랑하고 평생 한번도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성, 그 어디에 혼자 던져 놓아도 죄와 유혹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남성, 그 어떤 고난이 닥쳐도 믿음과 기도와 말씀으로 극복할 수 있는 남성, 가정을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이끌 수 있는 남성>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유명하고 돈많고 권력있는 남성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보다는 비록 이름도 없고 재벌도 아니고 권력은 없는 평범한 남성이라도 아내만 사랑하고 가정을 가장 화목하고 행복하게 이끌 수 있는 남성을 배우자로 예배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게 해 달라는 기도’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사람을 잘 만나면 운명이 바뀌고 일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등록일 : 2005-01-29 [23:45] | 조회 : 3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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