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시련과 악몽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 누리사랑넷

첫화면으로

누리사랑넷 관리자 모드

누리사랑넷 - LIFE 게시물 리스트

누리사랑넷 - Life

  
극한시련극복의길
  
시련극복나눔터
  
건강이야기나눔터
  
행복과성공나눔터
  
문화와청소년
 

누리사랑넷 - Mission

  
유명인의신앙세계
  
아름다운기독인들
  
새삶을찾은사람들
  
천국에가려면
  
알기쉬운기독교교리
 

누리사랑넷 - 논단

  
창조와진화
  
순기능가정만들기
  
나누고싶은글
  
필독권유의글들
 

누리사랑넷 - 정보마당

  
추천서적
  
추천사이트
  
나누고싶은정보
 

누리사랑넷

  
공지사항
  
자유게시판
  
운영자코너
 

이름

청랑 이상현목사

제목

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3

       이 땅에서 고통이 없는 장소인 ‘한센환우촌’같은 곳은 ‘고통없는 지옥’일 수 있다. ‘한센환우’들을 대하다 보면 고통이라는 것이 피해가야만 하는 불쾌한 것이라는 보편적 개념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고통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자유롭게 평범한 삶을 누리도록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카빌레 한센환우촌에서 브랜드 박사와 함께 보낸 일주일이 나에게는 생생한 기억들로 각인되어 있다.  고통으로 하나님을 저주하고 싶은 욕망의 유혹에 휩싸일 때마다 나는 한센병으로 눈이 실명해 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한센환우인 ‘로우’를 떠올린다. 

카빌레의 가장 유명한 환자는 작가인 스텐리 스테인이다. 그는 한센병의 잔인한 성질 때문에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매일 아침 뜨거운 세수용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러나 사용하는 물이 지나치게 뜨거운 온도여서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그의 손과 얼굴에는 없었다. 결국 그는 매일의 뜨거운 수건을 가지고 얼굴을 닦다가 시력을 조금씩 잃고 말았다.

만약에 당신이 한센병환자촌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 결코 다시는 고통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삶이라는 것은 공포와 위험의 비참의 연속일 것이다.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대부분은 고통이라는 것이 유용하면 선한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고통이후의 환희

한센환우들의 경우를 보면 고통은 그 자체가 우리들의 완전한 파멸을 막아주는 경고신호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이다.

또한 고통은 고통 이후의 환희를 가져오는 유용하고 훌륭한 역할을 한다. 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환희도 없다. 
역도선수들이 무거운 역기를 들 때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나 역기를 성공적으로 들어올렸다가 “탕”하고 역기를 내려놓는 순간 그는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펄쩍 뛰면서 기뻐한다. 고통이 없는 기쁨은 없다. 기쁨으로 충만해진 그는 고통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고통 뒤에 오는 환희는 고통을 흡수해 버리고 만다. 예수님은 출생을 예로 드셨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16장21절) 
스포츠에서의 승리의 기쁨은 훈련 중의 고통이나 경기 중의 고통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한다.
      
고통은 우리의 삶 속에서 쫓아내어야 할 것이 아니며 더더욱 가차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고통을 이 땅에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해 성찰없이 비난을 퍼붓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나는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 병원의 시트위에서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다가 죽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내나이 70대의 후반까지 테니스코트에서 라켓을 휘두르거나 요세미테 국립공원의 높은 곳에 있는 폭포까지 등산을 하여 주름진 얼굴 위로 흩어져 내리는 물줄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느끼기를 소망한다.

만약 나의 삶이 약이나 안락을 통한 행복을 추구하는데 소모한다면  70대 후반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등산을 하는 꿈은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행복은 안락을 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멀리 도망가 버린다. 행복은 오직 상당한 고통을 감내하기로 각오한 사람에게 오는 선물이다. 고통이 없는 기쁨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 * *               
이상은 필립 얀시의 저서인 <하나님 내마음이 상할 때마다 어디 계셨습니까.>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저는 필립 얀시가 쓴 위의 내용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육체에 뿐만 아니라 영혼(비기독교인들에게는 ‘영혼’이라는 용어보다 ‘정신’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것 같지만  ‘영혼’이라는 말도 그리 낯선 말을 아닐 것 같아서 ‘영혼’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겠슴)에도 적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얀시의 글을 읽으면서 ‘과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신체에만 부패와 파멸을 방지하는 고통감지조직들을 만들어 두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만들 때에도 그 영혼이 ‘영적인 한센병’에 걸려 완전히 부패해서 파멸로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영혼의 고통감지장치’를 만들어 두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그 ‘영혼의 고통감지장치’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키고 끝내는 파멸의 길로 이끕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성경 야고보서 1장15절 말씀)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욕심과 죄가 영혼의 한센병을 발생케 하여 부패와 파멸로 이끌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내거나 죄를 지은 후에는 양심이 찔려 영혼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 속에 사탄이 넣어주는  ‘영혼의 한센병균’이 침입하면 욕심을 내거나 죄를 지어도 양심이 마비되어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욕심과 죄를 계속 짓다가 영혼이 썩고 문드러져 영혼이 파멸과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우리의 영혼에는 자신의 욕심과 죄에 대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양심’이라는 고통감지장치뿐 아니라  영혼 자체에는 무수한 고통감지장치가 널려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 전체에 고통감지조직이 거미줄처럼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 자체가 고통감지조직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 전체에도 고통감지조직이 거미줄처럼 빈틈없이 짜여져 있어서 영혼 자체가 고통감지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체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전신에 거미줄같이 퍼져있는 고통감지기능에 의해 고통을 받듯이 영혼도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영혼 전체에 존재하는 고통감지장치에 의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정신)은 외부의 어떠한 자극을 받으면 고통스러울까요? 

여러가지 자극이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자극은 우리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찔러댐으로써  고통을 줍니다.

부부사이의 관계, 형제자매의 관계, 부자간의 관계, 부녀간의 관계, 모녀간의 관계, 모자간의 관계,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 장인 장모와 사위의 관계, 친척간의 관계, 친구간의 관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사업 거래자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 선후배와의 관계, 단체 회원들 상화관계, 종교단체 구성원들의 상호관계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대해야 할 인간관계는 수없이 많습니다. 

매일 매일의 수많은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자극을 받습니다.  그 자극은 주로 말을 통해서 옵니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 아픈 곳을 쑤시고 찌르는 말,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말, 자랑하는 말,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 이러한 말에 의해 정신의 고통감지기능이 자극을 받아 고통을 받게 됩니다. 
 
얼마 전에 가정사역에 관한 테이프를 듣다가 이런 내용을 들었습니다. 외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죽어야 할 놈이야 . 나가서 뒈져라!"라는 말을 듣고 아들이 나가서 자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화가 난 나머지 그런 말을 했겠지만 아들을 그 말을 듣고 ‘정말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존재일거야.’ 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칼이나 총 못지않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의 비수로 영혼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면 크나큰 고통을 받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무심코 한 말들이 상대방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고통을 줍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말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오늘날 이혼율이 30%포인트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동거하는 남녀가 갈라서는 비율은 70%포인트나 된다고 합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거나 동거남녀가 갈라서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은 바로 말일 것입니다. 이혼은 부부간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됩니다.  서로 무시하는 말 한마디 , 상대방의 가문이나 가정을 비판하는 말 한마디, 상대방의 행동을 무시하는 말 한마디가 작은 불씨가 되어서 상대방의 정신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고통을 주어서 점점 큰  부부싸움이 되고 나중에는 부부 1차대전 2차 대전 3차대전으로 비화하여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게 됩니다.

부부관계뿐 아니라 모든 가족관계는 주로 말로써 서로의 영혼고통감지기능에 자극을 주어서 서로 말로 찌르고 찔리는 과정을 통해서 상처를 받고 불화하게 됩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 사이도 말로써 서로 상대의 영혼고통감지기능을 찌르고 찔려서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 외에 모든 인간관계는 말 때문에 고통감지기능이 자극을 받아 고통을 느끼고 인간관계가 불화하게 되고 깨어지게 됩니다.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인간관계에서 뿐만아니라 주위의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됩니다.
가난한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감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우리의 영혼은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심적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거액의 빚더미에 올라앉았을 때 그것이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성친구에게 실연을 당했을 때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큰 상처를 받아 통곡을 하며 울게 됩니다. 성적이 갑자기 내려갈 때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자극을 받아서 고통받게 됩니다.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할 때 꼴찌했을 때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작동하여 큰 고통을 겪습니다. 

사고로 몸이 크게 다쳤을 때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에 의해서 육체도 큰 고통을 받지만 ‘몸이 회복되지 못하고 장애인이 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대학의 입시에서 낙방했을 때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작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게 됩니다. 실직을 당했을 때에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자극을 받고 정신적으로 크나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자극을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직장에서 승진에서 누락될 때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작동하여 고통을 받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수많은 외적인 시련과 역경과 고난은 우리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자극하여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과 큰 상처를 남겨 줍니다.   

그런데 한센병환자들이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서 육체에 가해지는 여러가지 자극에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지 못하듯이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영혼에 가해지는 여러가지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저는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의 적극적 사고방식이 인본주의적 요소가 많아서 신학적으로 그 분의 사상을 100%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의 책 중에는  저에게 도전을 주는 유익한 점도 많아서 가끔씩 읽습니다.

어느 날 필 목사님에게 한 청년이 찾아와서 한참동안 자기의 고민스러운 문제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의 푸념을 다 듣고 계시던 필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 젊은이, 내가 아무런 문제도 없고 고민거리도 없는 곳을 보여주지.”라면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행복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모델케이스가 될 만한 어떤 사람의 가정에 데리고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필목사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차를 태우고 계속 어디론가 가는 것이었습니다. 시외로 계속 나가자 청년이 궁금해서 “목사님 ,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달리기만 했습니다. 한참을 달린 후에 차를 세웠는데 그 곳을 보니 십자가가 수없이 많고 십자가 앞에는 꽃다발도 많이 있었습니다.

필박사는 그 청년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네. 고민이나 문제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빨리 이 공동묘지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어요.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살아있다는 증거야.”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필박사님의 말대로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유일한 곳, 고통이 없는 유일한 장소는 무덤일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가 다가옵니다. ‘문제라는 작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다가오지 절대로 죽은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라는 작자’가 다가온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고민스러울 때 우리는 아무런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무덤 속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아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필립 얀시는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무덤 속에 있는 죽은 자를 예로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 중에 한센병환자를 예로 들었습니다.

저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에 대해서 말할 때 죽은 자를 예로 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살아서 호흡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경우가 있는데 ‘식물인간’이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호흡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은 유지하고 있지만 의식이 없어서 몇 년 심지어 몇 십년동안 누워서 지내야 하는 ‘식물인간’들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식물인간과 전신마비자는 다릅니다. 전에 야구 감독을 했던 어느 감독(그 분의 명예를 위해 이름은 밝히지 않겠슴)은 전신마비가 되어 버려 목도 움직이지 못하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잃지 않아서 아내를 보면 눈물을 줄줄 흘린다고 합니다. 그런 분은 전신마비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의식이 남아 있고 영혼의 고통감지 기능은 살아있어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기에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인간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까지 완전히 마비되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호흡만 유지하고 있을 뿐 정신적으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식물인간이 되면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정신에 그 어떠한 자극을 가해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수년 전 전주 예수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남자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서 6년간이나 의식을 잃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기독교인인데 6년간이나 남편의 소생을 위해서 눈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남편의 귀에 대고 기도하기를 6년이나 했는데 어느 날 남편의 귀에 대고 소생을 위해 기도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남편이 “아멘!”하더니 의식을 회복해서 매스컴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극히 희귀한 경우이고 대부분의 식물인간들은 오랜 세월동안 의식을 잃고 지내다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식물인간들은 육체의 고통감지 기능도 거의 마비된 상태이지만 영혼의 고통감지기능도 마비된 경우입니다. 식물인간에게 누가 아무리 욕을 하고 무시하는 말을 하더라고 정신적으로 전혀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영혼의 고통감지 기능이 완전히 마비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자 중에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은 식물인간외에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광인(狂人)의 경우가 있습니다. 광인은 쉬운 말로 ‘미치광이’ ‘미친사람’입니다. 광인이란 정신병원에 입원한 ‘정신분열증환우’ 정도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친사람이란 본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리고 정신이 맑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제3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금은 광인들이 대부분 요양원 등에 수용되어 있지만 옛날에 그런 시설이 없을 때는 그냥 거리에서 방황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거리에서 방황하는 광인이 있습니다.
머리에는 새끼줄을 매고 허리에도 새끼줄이나 끄나풀을 매고 다닙니다. 머리카락은 봉두난발을 하고 얼굴에는 때가 끼어서 새카맣습니다. 손톱은 독수리 손톱입니다. 옷은 다 떨어지고 때로 찌들어 새카맣게 되었습니다. 입에는 침을 질질 흘립니다. 배가 고프면 쓰레기 통을 뒤져서 생선뼈에 조금 붙어있는 생선을 먹습니다. 혼자서 히죽히죽 웃다가 울다가 혼자 중얼중얼 거리기도 합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폐인이 된 사람입니다.

이런 광인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광인이 되면 자기 자녀가 죽어도 영혼에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녀의 시체 앞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히죽 히죽 웃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은 식물인간, 광인(狂人)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욕을 해도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이 자기를 비웃고 놀리고 무시해도 심적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가족이 죽음을 당해도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앞부분에서 언급한 필립 얀시의 저서에 등장하는 폴 브랜드박사는 고통감지조직이 우리 육체 전체에 거미줄과 같이 짜여져 있어서 외부에서 자극을 받거나 내부에 질병이 생기면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중에 하나’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육체의 고통감지장치가 마비된 한센환우들이 모인 한센환우촌이야 말로 ‘고통없는 지옥’이라고 표현할 만큼 고통의 중요성을 예찬하는 ‘고통예찬론자’였습니다. 

물론 한센환우촌이 ‘고통없는 지옥’이라고 한 브랜드박사의 말의 의미는 환센환우촌 자체가 지상지옥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고통감지조직이 마비되어 육신의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자체를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일 것입니다.

한국의 한센환우촌인 소록도나 여수 애양원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산재한 한센환우마을들에는 거의 대부분이 교회가 있어서 한센환우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신앙생활을 철저히 할 수 있는 그 곳이 지상천국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폴 브랜드박사가 말한 의미는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상태에서 서서히 몸이 망가져 가는 한센병에 대해서 그것이 ‘고통없는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저는 인간의 영혼에 고통감지기능이 있어서 우리의 영혼이 외부의 자극을 받을 때 정신적인 고통을 받고 마음을 아파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버려서 외부의 모욕이나 자극에도 열등감이나 마음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말로 ‘고통없는 지옥’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한센환우들보다 더욱 더 불행한 사람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 인 ‘광인(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센환우들은 비록 육신의 고통감지조직이 마비되어 살이 썩어들어가고 문드러져가도 고통을 느낄 수 없어서 육신은 서서히 망가져 가지만 그들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은 마비되지 않아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정신적인 아픔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센환우들이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영혼의 아픔을 느끼고 절망도 느끼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승화시키기만 한다면 정상적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전국에 산재한 한센환우마을들의 교회에는 수많은 한센환우들이 육체의 장애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한센병으로 인해  두눈을 잃고 양손과 양발을 다 잃었지만 “내가 한센병에 걸려서 소록도에 오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한 말을 거부하고 지옥으로 향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소록도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천국에 가게된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찬양단을 만들어서 전국의 교회에 다니며 찬양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중국의 한센마을의 어느 한센환우는 한센병으로 팔 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몸이 통나무같이 되고 두 눈도 다 잃어버렸지만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도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으면 육체의 장애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도 하고 신앙으로 극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광인’의 경우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은 살아있어서 육체에 고통을 가하면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만 그의 영혼은 고통을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신앙을 찾을 수도 없고 정신력으로 자신의 환경을 극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야 말로 ‘고통없는 지옥’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록일 : 2002-01-29 [21:04] | 조회 : 11367 |

이전글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4
다음글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2

num
subject
name
hit
9비행기사고로 딸과 사위를 잃은 아버지 청랑 3458
8어느 한센환우의 슬픈 고백 청랑 3294
7딸과 아들과 아내를 잃은 남성 이야기 청랑 2848
6남편잃은 고통을 극복한 여성이야기. 청랑 2597
5중화상으로 얼굴이 변해버리는 고통을 당한 여성 청랑 7107
4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4 청랑 5647
3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3 청랑 11367
2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2 청랑 9569
1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1 청랑 11284

[1][2]

Copyright 2001 JESUS & Nurisarang.net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Hoony 접속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