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시련과 악몽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 누리사랑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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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청랑 이상현목사

제목

충격적인 시련을 당했을 때 위안받는 길 4

 폴 브랜드박사는 일생동안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한센환우들과 함께 지내면서 한센병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병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육체의 고통감지조직에 의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엄청남 축복이다.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병이 들거나 외부의 자극을 받았을 때 고통을 느끼면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방어를 하거나 응급조치를 취하거나 병원에 가거나 약국에 가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여 더 큰 고통을 방지하거나 질병을 치료받음으로서 육체가 질병이나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센병의 경우 세수하다가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줄도 모르고 계속 세수를 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눈으로 손을 본 후에야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알 수 없고 한 참 가다가 좀 쉬기 위해 신발을 벗으니 발가락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한센환우시인인 한하운씨는 길을 가다가 떨어진 발가락하나를 땅에 묻어서 발가락 무덤을 만들고 또 다시 길을 떠난다고 하는 시를 썼습니다.

한국에는 그나마 의술이 발달해서 한센환자가 병을 빨리 발견만 하면 더 이상 육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중국은 등소평이후 자유시장경제화 된 지금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재벌이 2천만명이나 되고 대도시는 서울 못지않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너무 많고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그 발전의 영향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골오지의 주민들은 우리나라의 1800년대의 모습이고  험한 산에는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산적들이 수백명씩 떼를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산길을 가다가 산적에게 잡혀서 죽은 선교사도 있습니다.

21세기와 18세기가 공존하는 나라인 중국의 한센환우촌에는 의학적인 혜택을 못받아서 양팔고 양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서 굴러서 다니는  통나무인간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면 양팔과 양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고 두 눈이 다 빠져도 모르기 때문에 ‘맹인 겸 통나무인간’이 되어버릴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한 폴 브랜드박사의 말은 진실입니다.

한편,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경우는 더욱 더 비참하고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육체의 고통이 마비되어 ‘시각장애우겸 통나무인간’이 된 분은 정신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면 의지할 절대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오지의 한센환우촌에서 통나무인간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사역하시는 한국선교사 김요석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수많은 통나무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고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은 정신적인 고통자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들 때 의지할 절대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힘들고 괴로울 때 의지할 절대자를 찾을 수 없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은 없습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정신적인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사람들이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는 사람은 그 고통을 이길 방법을 찾게 됩니다. 상담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앙을 갖거나 하는 등 고통을 이길 방도를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는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어서 극한의 시련을 당할 때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큰 축복 중에 하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지 않고 건재한 사람들이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질병으로 인해 육체가 고통을 받을 때 취할 수 있는 마음자세는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육체에 고통감지조직을 만들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이요 최대의 선물 중에 하나이다.]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그 고통을 주는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다쳐서 피가 나고 고통스러울 때 고통을 없애고 상처난 부위에 세균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옥도정기를 바르고 붕대로 감습니다. 

위장에 통증이 심할 때 병원으로 달려가서 위내시경 검사를 해서 무슨 병인가를 알아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술을 끊고 음식을 조절해야 합니다.

밤길을 가다가 강도의 칼에 팔이 찔려 큰 고통을 느낄 때는 런닝셔츠를 찢어서 상처를 싸맨 후에 택시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합니다.

머리가 빠게지도록 아플 때 병원에 가서 혈압검사를 받고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을 먹고 육식 과식을 절제하고 가벼운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육체에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질병으로 고통을 느낄 때 그 고통을 ‘빨리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하라는 축복의 신호(사인)’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주는 요인을 제거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외부의 자극이나 내부의 질병으로 인해 육체에 고통을 당할 때 그 고통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한탄합니다. 즉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최악의 저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습니다. 그는 다친 무릎이 너무 아파서 그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참이나 울다가 그 돌부리를 무섭게 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주먹으로 돌부리를 내리칩니다. 그러니 돌부리는 그대로 있는데 그의 주먹의 피부가 벗겨져서 피가나고 따갑고 아픕니다.

 너무나 화가난 그는 돌부리를 향해 2세기 10세기 18세기 20세기 등등 있는 욕 없는 욕을 마구 퍼부어대고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진 자신의 불우한 신세를 한탄하고 대성통곡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도 다친 무릎에 옥도정기를 바르고 붕대로 싸맬 생각은 하지 않고 이를 갈면서 돌부리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는데 왜 하필 나만 넘어졌느냐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더럽게 재수없는 날이구먼”이라며 일진이 나쁜 것을 원망했습니다. 그는 또 자기를 돌부리에 걸려지게 한 하나님을 향해 하늘을 보고 삿대질하며 하나님을 향해 2세기 10세기 18세기 20세기 욕을 하고 원망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불쌍하고 불행스러워 보이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한 ‘신’이 저주스러워 식음을 전폐하면서 ‘신의 악랄한 섭리’에 대해서 반항단식투쟁을 합니다.

몇날 몇일을 식음전폐 단식투쟁을 한 뒤에 ‘돌부리따위에 걸려서 넘어질 정도로 재수없는 나같은 인간, 신에게 버림받은 나같은 인간이 살아서 무엇하랴’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서 목을 메에 자살해 버리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농약을 마시려다가 미수에 그칩니다.

자살도 뜻대로 되지않자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날이면 날마다 술로 세월을 보내어 알콜중독자가 되고 맙니다.    물론 이 이야기처럼 돌부리에 걸려서 인생을 자포자기하고 폐인이 된 사람은 없겠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교회에 잘 다니던 성도 한 사람이 밤길에 강도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칼로 팔과 등을 찔려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위문차 심방을 갔습니다. 그러자 그는 “목사님, 다시는 심방오지 마시오. 나 교회도 졸업할랍니다. 교회에 다니면 복받는다더니 이게 복입니까? 교회에 10년이나 다닌 나를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대접할 수 있습니까? 이게 목사님이 말하는 복이란 말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는 일체 교회에 발을 끊고 목사님이 찾아가면 강도에게 찔렸던 팔뚝을 보여주며 “나 예수믿고 복을 째지도록 받았소!”라며 비웃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며 목사님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알콜중독자가 되어 폐인같이 살다가 끝내는 알콜중독 때문에 병을 얻어서 죽었습니다.  

똑같은 육체의 고통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그 고통을 느끼게 하는 요인을 제거할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최악의 저주’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2세기 10세기 18세기 20세기등등 온갖 욕을 퍼부어 대면서 반항합니다. 그리고 인생을 포기하고 폐인이 되거나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럴 때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 우리는 두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역경으로 인해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걱정, 근심 , 고민 ,염려(같은 말이지만 뉘앙스가 약간씩 다르기에 네가지를 다 썼습니다.) 불안, 두려움, 낙심,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하거나 범죄의 길로 타락해버리거나 알콜중독, 마약중독에 빠져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폐인이 되는 경우입니다.

전에 어느 조직폭력배 두목이었던 분의 신앙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조직폭력배가 된 원인은 ‘어머니의 죽음’때문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잘 믿는 분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불치의 병에 걸리자 그는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적인 용어로는 소천 -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내 기도를 외면하고 우리 어머니를 데려갑니까?”라고 반항하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옆길로 나가서 나중에는 조폭두목이 되었다고합니다. 

세상에 어머니를 잃은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잃어도 그 슬픔과 고통을 이기고 선량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잃었다는 이유로 비뚤어진 길로 나가서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피해를 주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잘 믿다가 천국에 가셨기 때문에 앞으로 신앙생활 잘해서 천국에 가서 어머님을 만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천국에 계신 그의 어머님의 가장 큰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훌륭한 일을 많이 하여 천국에 상급을 많이 쌓아놓았다가 나중에 천국에 오면 기쁘고 반가운 얼굴로 어머니와 만나게 되는 것이 천국에 계신 어머니의 가장 큰 소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천국에 계신 어머니의 소원을 알지도 못하고 어머니를 불러가신 하나님을 저주하고 원망하며 비뚤어진 길로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조폭두목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분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녔지만 믿음이 어리면 천국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반항기인 사춘기 때에는 어린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그 분도 쉽게 어머님이 소천하시는 크나큰 시련을 당하자 천국은 온데간데 없이 안보이고 슬픔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분이 조금만 생각을 달리했어도 옆길로 나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극한의 시련과 충격적인 일을 당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때 그것을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거나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고 생각하여 인생을 자포자기하여 타락과 범죄와 파멸의 길로 빠져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는 극한의 시련과 고난을 당하여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 이런 생각을 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내가 비록 큰 시련과 고난을 당해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을 부여받은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이다. 내가 만일 이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서 이 큰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광인(狂人)이었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되어 이 큰 시련을 당해도 시련을 극복할 정신조차 없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

다시 한 번 더 이것을 육체의 고통감지기능과 비유해 보겠습니다.
육체에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에 가해지는 위해(危害)에대비할 수 있고 고통을 주는 질병을 치료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딸은 연필을 깎는 칼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짝 반짝하는 ‘신기한 물체’가 너무나 아름답고 예뻐보이고 좋아보였습니다.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 ‘신기하고 예쁜 물체’를 감히 손으로 쥐었습니다. 그러자 손이 베여서 피가 났습니다. 다행히 제 딸은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어서 손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래서 앙 앙…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 신기하고 예쁜 반짝 반짝하는 물체’가 조금도 신기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두렵고 무섭고 나쁜 물체로 인식되었습니다. 잘못만졌다가는 큰일 나는 물체로 인식되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연필칼을 만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겨울에 외풍이 심해서 방이 추워 전기난로를 피운 적이 있습니다. 어린 딸은 ‘빨간 색을 발하는 신기하고 희한한 물체’를 보고는 그것을 가지고 놀고 싶어서 회심의 미소를 띄고 기어갑니다. 아빠나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악을 쓰고 떼를 쓰며 울며 불며 기어이 가려고 합니다. 엉덩이를 때려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 한 번 가까이 가봐라.’고 그냥 둡니다. 아기는 울음을 뚝 그치더니 높은 포복으로 재빨리 달려갑니다. 그리고 난로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예쁘고 신기한 빨간색’ 부분에 손가락을 갖다댑니다.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작동되었습니다. 으앙! 기절 할 듯이 소리를 지르며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웁니다. 그 다음부터는 난로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 피해다닙니다. 엄마가 일부러 아기를 안고 난로 가까이 가서 손가락을 잡고 ‘자 난로에 손을 대봐라’고 하며 난로불 가까이 대라고 해도 결사적으로 손을 뒤로 뺍니다. 

                                
어느 날 배가 아파오더니 화장실에 가도 변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랫배가 아팠습니다. 평생을 변비를 모르고 살아왔는데 변비증세가 나타난 것입니다. 변비가 심하니 대변은 물론이고 소변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변비약을 사와서 먹었습니다.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송곳으로 배를 콱콱 쑤시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육체의 고통감지조직이 제 기능을 발휘해서 너무나 아팠습니다. 남자어른의 체면상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이를 악물고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변비에 관한 책을 여러권 사다가 읽고 음식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심한 변비로 대변과 소변이 안나오고 밤새도록 고통을 받은 후부터  화장실에 가서 대변과 소변을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위장에 통증이 왔습니다. 요즘 한국사람의 사망원인의 1위가 암이라는 통계가 있어서 ‘혹시 위암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위의 아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내다가 배가 조금 아파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위암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두세달밖에 못살고 세상을 떠나는 것을 몇 번 봤기 때문에 요즘은 위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혹시 위암이 아닌가?’ ‘내가 죽으면 네 살과 한 살인 두 딸은 어떻게 되지’ 라는 걱정이 앞서곤 합니다. 그래서 ‘위암확인’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찍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위암’이 아니고 ‘위염’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위염에 관한 책을 보고 인터넷에서 위장병에 대해서 검색을 해서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위염을 방치하면 위암이 된다는 글을 읽고 음식을 극소식을 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는 등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 갈려고 일어날려고 하니 왼쪽 목이 아프고 왼쪽 어깨가 걸리고 아팠습니다. 누워서 일어날려고 해도 목이 아파서 겨우 일어났습니다. ‘아하. 중풍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 43세에 ‘중풍이 왔구나’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30대 초반에 중풍으로 쓰러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그 당시에 우리 마을에 40대초반의 남자가 술 때문에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제가 날마다 그 ‘젊은이’의 집에 문병심방을 가고 있었기 때문에 40대 초반에도 중풍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쓰러지면 네 살 한 살 두 딸은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혈압, 중풍, 성인병에 관한 책을 여러권 사서 빨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혈압을 재보니 정상이었습니다. ‘후유. 중풍은 아니구나’ 라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다가 신문의 건강코너를 보니 컴퓨터를 오래하면 목과 어깨가 결리게 된다는 글이 나왔습니다. 제가 목이 결리고 어깨가 아픈 이유도 ‘컴퓨터’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신문의 글을 읽기 전에는 컴퓨터를 오래한다고 설마 목과 어깨가 그토록 아프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전도하기 위한 ‘구령의 열정’에 불타서 전도사이트 ( 그것이 나중에 누리사랑넷이 되었슴)를 개설하기 위해 글을 쓰거나 인터넷에 들어가서 자료를 모으느라고 며칠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아침에 일어날려고 하면 목이 아파서 겨우 일어나고 어깨가 아파서 팔을 못올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즉 ‘인터넷 전도중독증’이라는 병 때문에 생긴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컴퓨터는 하루에 한시간만 사용하고 하루에 목운동, 어깨운동 30분씩 하기로 했습니다. 며칠간 그렇게 하자 목이 풀리고 어깨도 풀렸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컴퓨터를 오래하지 않고 컴퓨터를 한 뒤에는 목과 어깨운동을 반드시 실시합니다.

제가 위의 여러 가지 체험담을 이야기 한 이유는 육체에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어서 고통을 느낄 때  그 고통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치료를 받거나 어떠한 조처를 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한센환우들의 경우에는 몸에 질병이 생겨서 썩어가도 그것을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이 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어서 우리의 정신에 고통을 느낄 때 정신의 고통인 걱정, 고민,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 어떠한 조처를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마비된 광인(狂人)의 경우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닥쳐도 무감각하기 때문에 그 시련과 고난에 대해서 속수무책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의 고통감지기능이 살아있어서 여러가지 시련과 고난이 다가올 때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음으로써 그 시련과 고통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가장 큰 축복이며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제 3 장 극한의 시련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

저는 앞부분에서 극한의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원리’ ‘하향비교의 원리’ ‘신앙의 원리’ 이 세가지로 위안을 받고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제 3 장에서는 극한의 시련과 고통을 이기고 승리한 분들의 사례를 예시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과 같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들은 ‘동병상련의 원리’로  위안을 받고, 이들보다 더 작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분들은 ‘하향비교의 원리’로 위안을 받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고 많은 위안을 받기를 바랍니다.

등록일 : 2003-04-10 [13:46] | 조회 : 56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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